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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경포대
해돋이의 명소로 경포에 위치한 누각
소개
‘경포대’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포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포대’는 고려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32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가이드
‘경포대’ 주변에는 ‘경포해수욕장’과 ‘경포호’가 주변관광지로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해수욕장’ 일대는 특히 해가 바뀌는 1월 1일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일출을 보기 위해 방문하므로 미리 숙박지를 예약해 두기를 바란다. 또한, ‘경포호’와 인접한 ‘초당동’의 ‘초당두부’는 강릉의 별미로 강릉 관광객에게 적극 추천하는 음식으로 꼭 먹어보길 바란다.
관광팁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13년 당시 강원특별자치도 안렴사 ‘박숙’이 현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에는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전해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경포대’에는 율곡이이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 및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강릉부사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글들이 있다. 또한, ‘경포대’는 비교적 높은 장소에 지어져 ‘경포호수’와 ‘경포대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경포8경’과 ‘경포월삼’은 천하의 장관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경포대’에서는 노송에 둘러싸인 고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으며, 동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과 시원한 풍광은 보는 이를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경포대’는 정면 다섯 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익공 양식에 2고주 7량 가구이며,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포대’ 주변 관광지로는 오래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진 ‘경포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명승지#일출#경포호#월파정#경포해변#경포호수#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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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오죽헌
역사적 인물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
소개
‘오죽헌’은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다.
관광가이드
‘오죽헌’은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의 외가로 유명해진 강릉의 대표 유적지이다. ‘오죽헌’에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사당인 ‘문성사’와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과 율곡의 유품소장각인 ‘어제각’ 그리고 ‘율곡기념관’과 율곡 일가의 ‘유품전시관’ 등이 있다. ‘오죽헌’은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가치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팁
‘오죽헌’은 경포호의 죽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뜰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오죽헌’이라 이름 붙여졌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그러나 오죽헌은 그의 친가가 아니라 외가, 곧 신사임당의 친정집 이었다.‘오죽헌’은 선교장에서 650m쯤 계속 가면 7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좌회전해 400여 미터 가면 ‘오죽헌’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오죽헌’에는 관광객을 배려한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시내로 오가는 버스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하지만, 오죽헌 안에 따로 식사할 곳은 없기 때문에 경포대나 시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오죽헌’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알려진 이유는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기 때문이다.‘오죽헌’에는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에 용꿈을 꿨다는 데서 이름 지어진 ‘몽룡실’이 있는데, 이곳은 온돌방과 툇마루로 된 정면 3큰 측면 2칸의 일자형 집으로 별당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오죽헌’에는 샛담 서쪽에 있는 평범한 건물인 ‘안채’가 있는데, ‘안채’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 것이다.이외에도 정조 임금이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벼루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인 ‘어제각’이 있다.
#죽헌동#보물#조선시대#신사임당#율곡이이#몽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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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강릉대도호부 관아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
소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강릉 임영관 삼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가이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용강동 58-1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남쪽으로는 국가유산인 강릉 임영관 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1994년 7월 11일 강릉 임영관지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1월 27일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남쪽으로는 국가유산인 강릉 임영관 삼문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 및 사진자료를 근거로 하여 전대청, 중대청을 복원하였다.
관광팁
대도호부(大都護府)는 지방의 큰 고을을 다스리는 관청이다. 강릉대도호부는영조 때 출판한 임영지의 기록으로 볼 때 고려초기부터 1927년 1차, 1929년 2차 강릉보통공립고등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천년 이상을 보존했으나 그 때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강릉경찰서를 세웠으며, 1993년 강릉시청을 세우려고 신축기공식 후 관상수를 옮겨 심던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조사를 하고 복원하게 되었다.국보로 알려진 ‘임영관삼문’은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에 위치한 이곳을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오면 된다.임영관은 임금이 먼 곳에 있어 직접 찾을 수 없으므로 임금을 대신한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취임식, 초하루와 보름에 인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리고 중대청은 부사의 관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된다.1993년 강릉시가 시청사 신축을 목적으로 공사를 실시하던 중 건물지의 기단석렬 및 적심석이 확인되었고, 많은 양의 기와편 및 자기류가 확인되어 공사가 중지되었다. 이후 일대에 대한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물지가 확인되어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1998년에 정식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의하면 936년(고려 태조 병신 19년)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고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행)랑, 삼문 6칸 등 총 83칸이 있었다고 한다.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강릉 임영관의 객사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강릉대도호부관아는 동헌권역, 칠사당권역, 임해관권역으로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동헌권역은 건물들이 모두 깨끗하고 단청의 색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동헌건물은 관람 및 체험시설이었고, 그 옆의 별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복원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강릉대도호부관아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보면 칠사당이라는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건물이 있다. 이름만 보면 신주를 모신 사당 같은 느낌이지만, 아전(지금의 지방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일곱 가지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곳이라고 해서 칠사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강릉대도호부관아의 부속건물이다. 새로 지어진 동헌의 뒤로 돌아가면 오래된 문이 하나 나오는데, 이 문을 임영관 삼문이라고도 하고 객사문이라고도 한다. 단청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화려한 모양의 나무들이 잘 짜맞추어져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수 백년동안 서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강릉대도호부는 규모가 꽤 큰 관아였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어 옛 모습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칠사당과 삼문이 뿐이다. 임영관 건물들도 발굴 복원된지 겨우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새 건물이다.강릉대도호부를 둘러보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복원과 보수를 하면서 사용한 콘크리트 흔적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일제 치하에서 사라진 유적의 비극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아#건물터#임영관#칠사당#건축물#객사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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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임영관삼문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세워진 목조 건물
소개
강릉 임영관 삼문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문 중 하나로, 1962년에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강릉의 자랑이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옛 명칭은 ‘강릉 객사문’이었는데, 2010년 4월부터 ‘임영관 삼 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영관 삼 문은 단층의 맞배지붕으로, 3칸 2호의 장중한 형태를 갖춘 우수한 팔각 문이다. 건립되었던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건축 방식으로 보아서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목조 건축사상 뛰어난 구조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이다.
관광가이드
객사는 옛날 중앙에서 오는 관리나 내빈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시설을 일컫는데, 임영관 삼문은 객사의 문 이름이다. 임영관 삼 문이 있는 강릉 객사는 고려 태조 때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그 무게 있고 두터워 보이는 아름다움과 섬세한 솜씨가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 가는 길에 들러서 쓴 친필이다. 객사 문은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그 중후 미와 구조의 정교함은 우리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또한, 기둥의 배흘림은 그 어느 건물보다도 심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된 인상을 주며 장식화 경향이 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수덕사 대웅전보다 건축연대가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객사 문만이 남아있다. 절집이 아닌 목조건물로는 이 객사 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관광팁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관에 있는 강릉 임영관 삼 문은 강릉에 오는 내빈을 접대하던 곳으로, 강릉 시내와 가까워 강릉에 오는 관광객들이 찾기에 좋은 곳이다. 또한, 그 옆에는 강릉 대도호부 관아가 있어 같이 들르면 좋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앙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로, 관아와 공해, 객사 등을 합해 모두 313칸 규모로 강릉의 행정 중심공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임영관 삼 문과 칠사당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손되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강릉의 옛 화려했던 시절을 간직한 곳이라 탐방할 가치가 있다.
#임영관#용강동#국보#조선#객사#대도호부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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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선교장
한국 전통가옥을 대표하는 곳
소개
‘선교장’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 지방의 명문인 ‘이내번’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교장’은 ‘열화당’, ‘안채’, ‘동별당’, ‘활래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가이드
‘선교장’은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 개인소유의 국가유산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되어온 전통가옥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조선시대 당시의 가옥과 문화를 보여주는 관광지로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관광팁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선교장의 사랑인 ‘열화당’이 있으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과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선교장’ 주변경관으로는 주변에 송림이 우거져 있고 낮은 동산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교장’의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다.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를 나타내며,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 있는 경관을 제공한다.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웠으며,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선교장’ 주변 관광지로는 오죽헌과 경포대, 참소리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학생들을 동반한 관광객에게 추천하는 ‘강릉’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중요민속자료#운정동#연못#전통가옥#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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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임당동성당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국적인 천주교회
소개
임당동 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에 있는 성당이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옥천동 성당과 노암동 성당 등 많은 성당이 이곳으로부터 분리해 나가 영동지역 천주교의 중심지로 일컬어진다. 수차례 창, 지붕, 바닥 등을 보수하였지만, 정면 중앙부 종탑을 비롯한 외형이 건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장식 또한 독특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10년 2월 19일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광가이드
강릉 시내에서 햇살 속을 걷다 보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예쁜 성당 앞에 서게 된다. 성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둥글게 솟은 천정과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햇빛과 함께 상아색 성당 내부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낸다. 이국적인 성당의 따스함과 함께 근대문화유산을 보며 경건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관광팁
임당동 성당은 이국적인 풍경의 성당과 함께 우리나라의 근대문화유산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임당동 성당의 미사 시간을 피하면 성당 내부를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임당동 성당 맞은편에는 강릉 대도호부 관아가 있어 성당을 본 뒤 함께 둘러보면 좋다. 또한, 임당동 성당의 뜰에는 3월이면 매화가 만발하니 시기를 잘 맞춘다면 매화 향기와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성당#천주교#스테인드글라스#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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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허균과 허난설헌의 문학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공원
소개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시설로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장, 녹지 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가이드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네모나게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와 만나고 이어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관광팁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중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혁 정신을 지향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혁신 사상을 선양하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의 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공원 내에는 허초희가 태어난 곳인 허난설헌 생가터를 비롯한 기념관, 동상, 시비 등이 위치하고 있다.생가터 뒤쪽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은 너무나도 멋진 휴식공간을 제공한다.가족단위로 힐링하러 오기에 딱 좋은 곳으로 주말에 경포대나 다른 강릉의 관광지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쉬기 좋은 안락한 휴식처이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는 매년 봄가을에 난설헌문화제와 허균문화제 행사가 개최된다. 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허균과 난설헌의 얼을 선양하는 문학행사와 더불어 솔밭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들차회는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끈다.강릉시의 유명한 장소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허균 허난설헌공원의 소나무 숲을 거닐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초당동#조선#홍길동전#허균#허난설헌#기념관#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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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김동명문학관
강릉이 낳은 근현대시인 김동명을 위한 문학관
소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에 있는 시인 김동명의 문학관은강릉에는 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여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하는 데 다소 제약이 되었으나, 김동명 문학관이 개관함으로써 문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유용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광가이드
김동명은 전원적인 서정과 민족적인 비애를 시화한 시인으로 강릉의 현대 문학에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강릉이 낳은 한국 근현대의 대표 문인인 초허 김동명[1900~1968]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며 지역 문예 진흥에 이바지하기 위해 2013년 7월 3일 김동명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부지 면적은 8,656㎡, 건축 면적은 235.39㎡로 생가 한 채와 전시관 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가는 방 4칸과 부엌 1개가 있고, 전시관은 전시실 1칸, 세미나실 1칸으로 되어 있다.
관광팁
전시실에는 김동명 시인이 가지고 있던 책을 중심으로 김동명의 서재를 재현해 놓았다. 시집, 정치 평론, 수필집, 또 생애를 알 수 있는 연보, 문학 활동의 내역, 그가 발간한 각종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미나실에서는 각종 문학 행사와 동시화 전시, 시 낭송회, 백일장, 문인들의 월례회 또는 발표회, 가곡의 밤, 작은 시설 문화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김동명 문학관에서는 각종 문학 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학회 정기 모임 및 문학 행사, 문인 협회 주최 백일장, 북콘서트, 가곡의 밤 등 문화 행사, 시화 일러스트의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영화 상영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가난한 농민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동명의 중심에는 김동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동명이 원산으로 이사 가기 전,사기막리 외가(갈미봉)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마침 서당에서 열린 시회에서 동명의 시가 장원에 뽑혀 온 동에가 들썩였어도 칭찬 한마디 없이 인색했다고 한다.아들이 자만심에 빠질까 봐 우려한 어머니의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어머니는 아들이 강릉 군수가 되어 한께 고향으로 되돌아가길 바랐고, 신문학을 배우기 위해 떠나온 고향이지만 세파에 시달리고 서러우니 몸서리치게 생각나는 건 나고 자란 그곳, 고향 땅 강릉 뿐이었을 것이다.김동명문학관에 가면 가난했지만 가련하지 않았던 시인,김동명 이제 그가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사천에 왔다면 주변관광지와 맛있는 먹거리를 먹어보고 가길 추천한다. 인근에 있는 사천항과 사천해변은 작은 어항이지만 아름답고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로 인기 있은 해변이다.사람들이 사천항을 찾는 또 하나는 바로 물회와 미역국이 유명하고 맛있다. 물회는 오징어, 멍개, 해삼, 세꼬시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고 각종 채소와 초고추장을 넣고 말아 먹는 것인데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별미이다.
#시인#김동명#문인#문학관#전시실#문화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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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굴산사지당간지주
화강석으로 만든 통일신라 시대의 지주
소개
거대한 한 덩이의 돌을 사용한 한국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이다. 현재 하부가 묻혀서 당간을 세워 놓았던 기대석(基臺石) 등 하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4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는 평면이며, 하부는 돌을 다듬을 때 생겨나는 잡다한 선조(線彫)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는 내면과 외 측면이 수직을 이루며, 앞뒤 양면은 상부까지 수직이나, 위 끝에 이르면 머리 부분을 양측에서 점차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며, 정상은 뾰족하지만, 남쪽의 지주 첨단(尖端)이 약간 파손되었다.
관광가이드
굴산사지당간지주는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범일국사가 창건한 굴건사의 유물이다. 높이는 5.4m이다. 당간을 고정하는 간은 상·하 두 곳에 있으며, 상부는 상단 가까이에 둥근 구멍[圓孔]을 만들어 간을 시설하였고, 하부는 3분의 1쯤 되는 곳에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게 하였다. 규모가 거대하며 그에 알맞게 소박하고 강경한 수법을 보여 눈길을 끈다.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엿볼 수 있다.
관광팁
굴산사지당간지주는 구정면 학산리 마을 근처의 논에 둘러싸인 평지에 있다.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갈 때 과연 이곳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조금만 가다 보면 굴산사지 당간지주라는 표지판을 찾아볼 수 있다. 앞에 도착하고 보면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될 것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당간지주의 두께가 특히나 두껍고 커서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가유산으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당간#보물#범일국사#굴건사#통일신라#굴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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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권
대관령 산신각
대관령 국사서낭(성황)을 모신 신당
소개
대관령 산신각 대관령 성황당 동쪽 약 30m 거리에 있는 사당으로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판에는 대관령국사성황사라고 쓰여 있는데, 사당은 건평 5평 정도의 기와집이며, 내부 정면 벽에는 국사서낭 신상이 걸려 있다. 신상에는 백마를 타고 궁시를 메고 있는 서낭신과 말고삐를 잡고 있는 시종, 그리고 그 앞뒤에 호랑이가 호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대관령국사성황대신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관광가이드
당 앞에는 서낭의 심부름을 하는 하위신인 ‘수비’를 모시는 수비당 또는 수구당이라고 불리는 돌상이 있다. 현재의 당우는 1944년에 중건된 것인데, 그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적어도 천 년 이상 된 강릉단오제의 유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관령국사서낭은 대관령산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는 지은 지 40∼50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으나, 『임영지(臨瀛誌)』와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대령산신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모시고 있는 산신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조 광해군 때 허균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김유신(金庾信)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주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건물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골기와 맞배지붕의 당으로서 현판에 산신당이라고 쓰여 있다.
관광팁
대관령 산신당에 있던 국사서낭과 여서낭은 5월 3일까지 함께 있다가, 5월 4일부터 5월 6일 마지막 절차로서 제사상에 있던 신간과 호개등, 지화 등을 태우는 의식인 소제 때까지의 남대천 단오제장으로 옮겨졌다가, 소제가 끝난 다음 다시 국사서낭은 대관령 국사 성황사로, 여서낭은 대관령 국사 여성황사로 각각 돌아가게 된다.
#단오제장#대령산신#대관령산신#강릉단오제#기념물#성황당#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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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관음리 오층석탑
고려 시대 안국사라는 사찰에 있던 석탑
소개
관음리 오층석탑은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석탑으로 1992년 6월 10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중기단 위에 네모 반듯한 5층의 탑을 올린 고려 시대의 석탑이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옥개(屋蓋)의 모서리가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은 여러 장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짜여 있고, 하층기단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하대중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3구(軀)씩 새겨져 있으며, 하대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상층기단을 받들고 있다. 상대중석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모서리기둥)와 1주(柱)의 탱주(撑柱:버팀기둥)가 있다. 상대갑석은 아랫면에 비스듬한 부연(副緣)을 두고 윗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1층 옥신(屋身:몸돌)을 받들고 있다.
관광가이드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를 찾아가면 옛 절터에 건립된 높이 약 3.3m의 석탑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석탑은 이곳에 있던 절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동리의 이름을 붙여 관음리 오층석탑이라고 부른다. 몇 가지 기록에 따르면 안국사라는 절 이름이 보여 이 일대를 안국사지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건물지의 축대와 주초석이 노출되어 있고 장대석들도 많이 남아 있어 옛 절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관리되지 않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탑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관광팁
관음리 오층석탑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위치와 관리되지 않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 풀숲이 무성하게 우거지는 여름철에 가까울수록 탑을 쉽게 찾는 것이 어렵다. 인근에 있는 마치 민가처럼 보이는 절집의 뒤쪽으로 이동하면 만나볼 수 있다. 숲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어 질문할 수 있다면 무리 없이 찾아갈 수 있다.
#세월#안국사지#고려#석탑#오층석탑#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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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매월당김시습기념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의 저자
소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정신을 계승하고 시와 소설에 담긴 김시습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관광가이드
김시습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 비판 인식을 판타지로 승화시킨 5편의 작품을 묶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단종 폐위에 반대하는 생육신 중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김시습의 얼과 문학사상을 선양하기 위하여 2007년 6월 15일 김시습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부지 면적은 3,117㎡, 건축 면적은 358㎡로 전시관 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은 전시실 1칸, 저포놀이 체험방 1칸, 애니메이션방 1칸, 포토존방 1칸으로 되어 있다.
관광팁
강릉은 김시습의 관향(貫鄕)이자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했던 곳으로 유랑시절의 거점이였다. 그는 격식 없는 자유로운 시와 글을 썼던 문인이자 불교의 철학과 유교이상을 결합하려고 고심한 철학자, 몸과 생명을 중시하는 수련도교를 실천한 사상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전통미를 찬미한 여행가였다. 또한 시대와 불화했던 지식인이었으나 고결한 인품과 굳센 지조는 후세에 길이 존경받았다. 이러한 김시습의 빛나는 문학과 얼을 계승하고자 기념관을 세워 선양하고 있으며 각 전시실에는 그의 대표적인 한시 동봉육가 영상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이 있으며, 금오신화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방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인 「금오신화」 중「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전통민속놀이 “저포놀이”를 배워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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