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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보광리석조여래좌상
대좌와 광배를 갖춘 석조여래좌상
소개
보광리 석조여래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높이 1.7m의 석불이다. 1992년 6월 10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좌와 광배를 갖춘 석조여래좌상이며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옛 절터에 있다. 토지 소유자인 이순선에 의하면 약 50여 년 전 이 지역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가이드
보광리 석조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문양이 우수해 눈길을 끈다. 화강암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으나 광배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다. 나발(螺髮)은 마멸된 곳이 많고 육계(살상투)가 크며 두 귀는 긴 편이다. 결가부좌를 하였고, 법의(法衣)는 주름이 선명한 우견편단(右絹偏袒)을 걸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지역에는 3단 대좌를 갖춘 불상의 현존 예가 드물어 양양 서림리 사지 석불과 함께 3단 대좌를 전형적으로 갖춘 불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관광팁
보주형(寶珠形)의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구별되고, 그 사이는 보상화문(寶相華文)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장자리는 화염무늬〔火焰文〕로 장식되었고, 뒷면에는 명문(銘文)의 흔적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다. 대좌는 하대 하반부가 매몰되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각 면에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아랫면에 2단의 받침이 있다. 상대석과 하대석은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광리#석조여래좌상#대좌#광배#사찰#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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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수문리당간지주
유려한 선과 소박한 인상을 지닌 당간지주
소개
1963년 1월 21일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높이 3.7m인 2개의 지주가 1m 간격으로 동서에서 마주 보고 있다. 마주 보는 내면·외면·전·후면에 별다른 조각이 없는 간소한 형식을 취하였으나 양 지주의 머리 부분은 내면 상단에서 외면으로 반원을 그리며 깎여 내려와 앞과 뒤쪽에서 보면 4 분원 모양이며 그 선이 매우 유려하다. 양 지주의 단면은 정사각형에 가깝고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좁아졌으나 큰 차이는 없다.
관광가이드
수문리 당간지주의 당간을 고정하는 간(杆)은 내면 상단에 직사각형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상부에만 설치하였다. 각 면의 돌을 다룬 솜씨는 정교하지 못하고 아무런 조각장식도 없어 당간지주로서는 세련되지는 않다. 그러나 상부의 간 구멍이나 반원의 기둥머리는 통일신라 시대의 조성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견실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동쪽 지주의 남측 면에는 해서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1817년에 다시 세워졌음을 나타낸다.
관광팁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 마주 보는 내측 면과 외면, 앞뒷면에 별다른 조식이 없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간결한 특징을 보인다. 당간은 사실 흔한 유물이 아니다. 깃대이기 때문에 주 재질이 나무라서 그렇다. 다만 문헌이나 소량 남은 유물을 통해 당간의 윗부분엔 용을 새기거나 삼지창을 올려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당간지주는 재질이 돌이기에 꽤 많이 남아 있다. 강릉만 해도 대창리, 수문리, 굴산사지 이렇게 세 군데에 남아있다.
#보물#당간지주#당간#통일신라#지주#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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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옥계권
산계리3층석탑
산계리 절터 무너진 석탑 재를 모아 놓은 3층 석탑
소개
산계리 3층 석탑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절터에 무너진 석탑 재를 모아 놓은 3층 석탑이다. 양식을 보아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탑 부근에서 잿더미가 많이 나와 옛 절터로 추측하고 있다. 가장 하단부에서 탑을 받치는 기단부는 한 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져 보수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마모가 많이 되었지만 가장 상층부는 본래의 모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
관광가이드
강릉의 옥계를 지나 대관령에 오르다 보면 산계리의 계곡 길이 나온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매우 긴 계곡 길을 오르다 보면 도로가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지점의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산계리 3층 석탑이 특유의 검고 투박한 모습으로 맞이해준다. 마모가 많고 변형이 커 옛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산계리 3층 석탑을 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을 견뎌온 모습에서 지난 시간의 아픔이 느껴진다.
관광팁
산계리 3층 석탑이 있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는 강릉에서 옥계로 내려가 다시 대관령 방향으로 산길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빙 둘러 가는 길인 만큼 시간도 적잖게 소요된다. 와룡 계곡과 쉰 길 폭포, 옥계굴, 옥계 해수욕장 등 인근의 관광지와 함께한다면 오고 가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산계리 3층 석탑을 보러 간다면 주변의 관광지를 함께 조사하고 갈 것을 추천한다.
#산계리#고려#석탑#세월#문화#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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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권
방내리삼층석탑
급격히 줄어드는 2층 이상의 옥신을 지닌 삼층석탑.
소개
방내리 삼층석탑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위치해 있는 높이 3.5m의 석탑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단층기단에 3층의 탑신을 형성하였다. 초층탑신에는 사방불을 조각했으며 각 면에 양 우주를 모각하였다. 현재 탑이 위치한 곳은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세운 무진사(無盡寺)의 옛터라 전해오고 있으나 지금은 마을이 들어서 확인할 수 없다.
관광가이드
기단부는 분명하지 않으며 탑신부는 작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옥신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가 모각(模刻)되어 있으며 2층 이상의 옥신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신라 시대의 승려 자장이 월정사를 창건하면서 불상만 이동시키고 탑은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석탑의 건축양식으로 봤을 때 고려 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광팁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한 터라 북강릉 나들목에서 나선다. 북강릉 나들목을 나서서 한참을 나오면 큰 도로와 마주치는데 바로 경상도에서부터 올라오는 7번 국도가 된다. 고성 방향, 즉 북쪽으로 길을 잡아 대략 3km를 가면 연곡면 사무소 방향이다. 연곡면 사무소 앞의 영진리에서 6번 도로를 타고 내륙 방향으로 이동한다. 6번 도로를 계속 이용하면 진부에 도달한다.
#고려#석탑#무진사(無盡寺)#신라#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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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대창리당간지주
양변에 장식 수법으로 모[角]를 죽였으며 화강 석재로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소개
1963년 1월 21일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5.1m. 화강 석재.2개의 지주가 원래의 위치와 형상대로 1m의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다. 이 주변에서 간혹 기왓조각 등이 수집되어 일대가 절터임을 알 수 있으나 전하는 사적은 없다. 마주 보는 내면과 외면, 전·후면에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으나, 외면의 양변은 모[角]를 죽인 약간의 장식수법이 보인다.
관광가이드
현재 당간을 받치던 대석과 기단부의 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기저부에 직사각형의 지대석을 구축한 점으로 보아 기단부도 직사각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내면의 간구 이외에는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는 간결한 양식이라든지 소박하고 견실한 전체의 수법이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보물 69)와 거의 같아 조성 연대도 이와 비슷한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관광팁
대창리 당간지주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1m의 간격을 두고 두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지주 사이의 깃대를 받치던 받침이나 기단부가 남아 있지 않아 원래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바닥 부분에 직사각형의 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기단부 또한 직사각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조각한 흔적이 없는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깃대#당간지주#8세기경#망덕사지#당간#모[角]#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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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사모정공원
사모정공원은 효와 사랑이 인간의 근본임을 강조하며 조성되었다.
소개
사모정공원은 효와 사랑이 인간의 근본임을 강조하며 조성되었다. 사모정과 효공원은 어머니와 옛 고향 마을을 기리는 정서가 담겨있다. 사모정 정자는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조성되어 격조있는 모습을 드러내며, 효공원은 문화 공간으로서 드높은 격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강릉지역의 인물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학문·예술성·효행을 소개하면서 효행의 세계화를 위한 발원지로서 위상을 펼쳐내고 있다.
관광가이드
효공원의 남쪽 공간은 사모정과 시비들과 조각상이 배치되었고, 북쪽 가장자리에는 ‘효향 강릉’ 사람들의 효행을 선양하는 석화와 시비들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고, 특히 이 지방의 인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선행을 기리는 안내문이 돌에 새겨져 있다. 공원의 서쪽 가장자리에는 모정탑 2기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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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보광리분청자요지
강원도의 유일한 분청사기 가마터
소개
1994년 9월 23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발견된 가마터 중 분청사기 가마터로는 유일하다. 성산면 보광리의 명주군 왕릉(溟州郡王陵:강원기념물 12)에서 서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은 베리 안 마을 입구의 구릉지 가운데에 있다. 현재 가마가 매장되어 있을 만한 장소는 흙의 색깔이 다른 곳보다 붉다. 가마의 규모는 약 1.4×20m로 추정된다.
관광가이드
가마터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남동쪽 하단 경사면은 거의 유실되어 유구층(遺構層)이 노출되어 있고, 주변 일대에는 수많은 청자·분청사기 조각·도침(陶枕:도자기를 구울 때 그릇을 괴는 물건) 들이 흩어져 있다. 수습된 조각들은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다.
관광팁
그릇 안쪽에 흑상감 된 연당초문 대접과 분청인화국화문 접시, 분청인화연판문 대접 등이 있고 약간의 백자 조각들도 함께 수습되었다. 수습된 도자기 조각의 문양으로 볼 때 대체로 13∼15세기 전반의 분청사기 가마터로 추정된다.
#보광리분청자요지#강원도기념물#가마터#분청사기#유구층(遺構層)#청자#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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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경포대
해돋이의 명소로 경포에 위치한 누각
소개
‘경포대’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포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포대’는 고려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32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가이드
‘경포대’ 주변에는 ‘경포해수욕장’과 ‘경포호’가 주변관광지로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해수욕장’ 일대는 특히 해가 바뀌는 1월 1일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일출을 보기 위해 방문하므로 미리 숙박지를 예약해 두기를 바란다. 또한, ‘경포호’와 인접한 ‘초당동’의 ‘초당두부’는 강릉의 별미로 강릉 관광객에게 적극 추천하는 음식으로 꼭 먹어보길 바란다.
관광팁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13년 당시 강원특별자치도 안렴사 ‘박숙’이 현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에는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전해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경포대’에는 율곡이이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 및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강릉부사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글들이 있다. 또한, ‘경포대’는 비교적 높은 장소에 지어져 ‘경포호수’와 ‘경포대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경포8경’과 ‘경포월삼’은 천하의 장관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경포대’에서는 노송에 둘러싸인 고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으며, 동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과 시원한 풍광은 보는 이를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경포대’는 정면 다섯 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익공 양식에 2고주 7량 가구이며,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포대’ 주변 관광지로는 오래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진 ‘경포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명승지#일출#경포호#월파정#경포해변#경포호수#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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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오죽헌
역사적 인물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
소개
‘오죽헌’은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다.
관광가이드
‘오죽헌’은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의 외가로 유명해진 강릉의 대표 유적지이다. ‘오죽헌’에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사당인 ‘문성사’와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과 율곡의 유품소장각인 ‘어제각’ 그리고 ‘율곡기념관’과 율곡 일가의 ‘유품전시관’ 등이 있다. ‘오죽헌’은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가치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팁
‘오죽헌’은 경포호의 죽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뜰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오죽헌’이라 이름 붙여졌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그러나 오죽헌은 그의 친가가 아니라 외가, 곧 신사임당의 친정집 이었다.‘오죽헌’은 선교장에서 650m쯤 계속 가면 7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좌회전해 400여 미터 가면 ‘오죽헌’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오죽헌’에는 관광객을 배려한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시내로 오가는 버스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하지만, 오죽헌 안에 따로 식사할 곳은 없기 때문에 경포대나 시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오죽헌’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알려진 이유는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기 때문이다.‘오죽헌’에는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에 용꿈을 꿨다는 데서 이름 지어진 ‘몽룡실’이 있는데, 이곳은 온돌방과 툇마루로 된 정면 3큰 측면 2칸의 일자형 집으로 별당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오죽헌’에는 샛담 서쪽에 있는 평범한 건물인 ‘안채’가 있는데, ‘안채’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 것이다.이외에도 정조 임금이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벼루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인 ‘어제각’이 있다.
#죽헌동#보물#조선시대#신사임당#율곡이이#몽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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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강릉대도호부 관아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
소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강릉 임영관 삼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가이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용강동 58-1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남쪽으로는 국가유산인 강릉 임영관 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1994년 7월 11일 강릉 임영관지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1월 27일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남쪽으로는 국가유산인 강릉 임영관 삼문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 및 사진자료를 근거로 하여 전대청, 중대청을 복원하였다.
관광팁
대도호부(大都護府)는 지방의 큰 고을을 다스리는 관청이다. 강릉대도호부는영조 때 출판한 임영지의 기록으로 볼 때 고려초기부터 1927년 1차, 1929년 2차 강릉보통공립고등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천년 이상을 보존했으나 그 때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강릉경찰서를 세웠으며, 1993년 강릉시청을 세우려고 신축기공식 후 관상수를 옮겨 심던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조사를 하고 복원하게 되었다.국보로 알려진 ‘임영관삼문’은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에 위치한 이곳을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오면 된다.임영관은 임금이 먼 곳에 있어 직접 찾을 수 없으므로 임금을 대신한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취임식, 초하루와 보름에 인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리고 중대청은 부사의 관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된다.1993년 강릉시가 시청사 신축을 목적으로 공사를 실시하던 중 건물지의 기단석렬 및 적심석이 확인되었고, 많은 양의 기와편 및 자기류가 확인되어 공사가 중지되었다. 이후 일대에 대한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물지가 확인되어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1998년에 정식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의하면 936년(고려 태조 병신 19년)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고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행)랑, 삼문 6칸 등 총 83칸이 있었다고 한다.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강릉 임영관의 객사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강릉대도호부관아는 동헌권역, 칠사당권역, 임해관권역으로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동헌권역은 건물들이 모두 깨끗하고 단청의 색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동헌건물은 관람 및 체험시설이었고, 그 옆의 별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복원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강릉대도호부관아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보면 칠사당이라는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건물이 있다. 이름만 보면 신주를 모신 사당 같은 느낌이지만, 아전(지금의 지방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일곱 가지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곳이라고 해서 칠사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강릉대도호부관아의 부속건물이다. 새로 지어진 동헌의 뒤로 돌아가면 오래된 문이 하나 나오는데, 이 문을 임영관 삼문이라고도 하고 객사문이라고도 한다. 단청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화려한 모양의 나무들이 잘 짜맞추어져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수 백년동안 서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강릉대도호부는 규모가 꽤 큰 관아였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어 옛 모습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칠사당과 삼문이 뿐이다. 임영관 건물들도 발굴 복원된지 겨우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새 건물이다.강릉대도호부를 둘러보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복원과 보수를 하면서 사용한 콘크리트 흔적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일제 치하에서 사라진 유적의 비극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아#건물터#임영관#칠사당#건축물#객사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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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권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허균과 허난설헌의 문학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공원
소개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시설로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장, 녹지 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가이드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네모나게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와 만나고 이어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관광팁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중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혁 정신을 지향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혁신 사상을 선양하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의 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공원 내에는 허초희가 태어난 곳인 허난설헌 생가터를 비롯한 기념관, 동상, 시비 등이 위치하고 있다.생가터 뒤쪽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은 너무나도 멋진 휴식공간을 제공한다.가족단위로 힐링하러 오기에 딱 좋은 곳으로 주말에 경포대나 다른 강릉의 관광지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쉬기 좋은 안락한 휴식처이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는 매년 봄가을에 난설헌문화제와 허균문화제 행사가 개최된다. 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허균과 난설헌의 얼을 선양하는 문학행사와 더불어 솔밭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들차회는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끈다.강릉시의 유명한 장소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허균 허난설헌공원의 소나무 숲을 거닐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초당동#조선#홍길동전#허균#허난설헌#기념관#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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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선교장
한국 전통가옥을 대표하는 곳
소개
‘선교장’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 지방의 명문인 ‘이내번’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교장’은 ‘열화당’, ‘안채’, ‘동별당’, ‘활래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가이드
‘선교장’은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 개인소유의 국가유산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되어온 전통가옥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조선시대 당시의 가옥과 문화를 보여주는 관광지로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관광팁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선교장의 사랑인 ‘열화당’이 있으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과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선교장’ 주변경관으로는 주변에 송림이 우거져 있고 낮은 동산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교장’의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다.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를 나타내며,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 있는 경관을 제공한다.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웠으며,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선교장’ 주변 관광지로는 오죽헌과 경포대, 참소리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학생들을 동반한 관광객에게 추천하는 ‘강릉’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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