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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권
대관령 산신각
대관령 국사서낭(성황)을 모신 신당
소개
대관령 산신각 대관령 성황당 동쪽 약 30m 거리에 있는 사당으로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판에는 대관령국사성황사라고 쓰여 있는데, 사당은 건평 5평 정도의 기와집이며, 내부 정면 벽에는 국사서낭 신상이 걸려 있다. 신상에는 백마를 타고 궁시를 메고 있는 서낭신과 말고삐를 잡고 있는 시종, 그리고 그 앞뒤에 호랑이가 호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대관령국사성황대신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관광가이드
당 앞에는 서낭의 심부름을 하는 하위신인 ‘수비’를 모시는 수비당 또는 수구당이라고 불리는 돌상이 있다. 현재의 당우는 1944년에 중건된 것인데, 그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적어도 천 년 이상 된 강릉단오제의 유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관령국사서낭은 대관령산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는 지은 지 40∼50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으나, 『임영지(臨瀛誌)』와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대령산신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모시고 있는 산신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조 광해군 때 허균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김유신(金庾信)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주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건물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골기와 맞배지붕의 당으로서 현판에 산신당이라고 쓰여 있다.
관광팁
대관령 산신당에 있던 국사서낭과 여서낭은 5월 3일까지 함께 있다가, 5월 4일부터 5월 6일 마지막 절차로서 제사상에 있던 신간과 호개등, 지화 등을 태우는 의식인 소제 때까지의 남대천 단오제장으로 옮겨졌다가, 소제가 끝난 다음 다시 국사서낭은 대관령 국사 성황사로, 여서낭은 대관령 국사 여성황사로 각각 돌아가게 된다.
#단오제장#대령산신#대관령산신#강릉단오제#기념물#성황당#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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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관음리 오층석탑
고려 시대 안국사라는 사찰에 있던 석탑
소개
관음리 오층석탑은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석탑으로 1992년 6월 10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중기단 위에 네모 반듯한 5층의 탑을 올린 고려 시대의 석탑이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옥개(屋蓋)의 모서리가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은 여러 장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짜여 있고, 하층기단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하대중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3구(軀)씩 새겨져 있으며, 하대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상층기단을 받들고 있다. 상대중석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모서리기둥)와 1주(柱)의 탱주(撑柱:버팀기둥)가 있다. 상대갑석은 아랫면에 비스듬한 부연(副緣)을 두고 윗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1층 옥신(屋身:몸돌)을 받들고 있다.
관광가이드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를 찾아가면 옛 절터에 건립된 높이 약 3.3m의 석탑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석탑은 이곳에 있던 절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동리의 이름을 붙여 관음리 오층석탑이라고 부른다. 몇 가지 기록에 따르면 안국사라는 절 이름이 보여 이 일대를 안국사지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건물지의 축대와 주초석이 노출되어 있고 장대석들도 많이 남아 있어 옛 절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관리되지 않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탑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관광팁
관음리 오층석탑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위치와 관리되지 않은 주변 환경으로 인해 풀숲이 무성하게 우거지는 여름철에 가까울수록 탑을 쉽게 찾는 것이 어렵다. 인근에 있는 마치 민가처럼 보이는 절집의 뒤쪽으로 이동하면 만나볼 수 있다. 숲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어 질문할 수 있다면 무리 없이 찾아갈 수 있다.
#세월#안국사지#고려#석탑#오층석탑#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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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구산서낭당
국사 성황신을 처음 모시는 유형 전승 시설물
소개
구산 서낭당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유적이다. 매년 음력 4월 15일 대관령 국사 성황제를 마치고 국사 성황 행차가 대관령 국사 여성황사로 가기 전 잠시 머물러 굿을 하고 제례를 하는 곳이다.
관광가이드
구산 서낭당은 약 30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당집은 약 10여 년 전에 새로 건립되었고 주위에는 돌담이 둘러쳐 있다. 구산서낭당의 특징은 다른 서낭당에 있는 성황지신, 토지 시신, 여역지신 외에 영산 지신이 있다는 것이다. 영산 지신이 있는 이유는 앞산이 영신재인데 개발로 인해 영산 신에 갈 곳이 없어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팁
구산 서낭당은 주변 공간이 좁고 진입로가 없어 구산 서낭제를 지낼 때마다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이에 강릉시는 구산서낭당 주변의 토지 1,213㎡를 매입, 공원과 주차공간을 조성해 단오제 전승 기반을 갖추는 한편 단오 관련 유적지를 활용한 관광객 유치 등 연중 단오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구산 서낭당은 사계절 관람객이 편리하게 방문해 단오제를 즐기고 있으며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서낭당#구산#성황제#서낭제#단오제#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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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권
최선평가옥
ㅁ자형이며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고가
소개
최선평가옥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 1리에 있는 옛집이다. 1985년 1월 17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ㅁ자집 형태로서, 안채와 사랑채는 팔작지붕이고, 그 외는 맞배지붕으로 되었다. 자연석 기단 위에 화강암을 이용하여 사다리꼴로 다듬은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올린 장혀수장 집이다. 현재는 부엌을 입식으로 개량했으며 방을 확장했다. 강원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관광가이드
안채는 앞면 4칸과 옆면 2칸 규모를 지니고 있다. 오른쪽에는 부엌을 배치하고 그 앞으로 창고와 외양간을 한 단 낮게 달아 지었다. 사랑채의 왼쪽 대청은 우물마루 바닥에 벽은 판벽이며, 천장은 눈썹 천장이다. 창호는 굽 널 네 짝 세살문이 앞면에 두 짝 달렸고, 측면에는 골판창이 있다. 창호 아래에는 머름 대를 둘렀다. 방의 왼쪽 천장에 개폐 가능한 환기창이 달려 있다.
관광팁
방과 방 사이에는 두 짝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앞으로 세살문과 미닫이문의 이 중문으로 되어 있다. 장혀 때문에 측면이 노출되어 있으므로 측면에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피하게 하였다. 사랑채의 중간 기둥에만 보아지를 달아 놓았으며, 장혀 윗부분에는 완자형 궁판을 두어 구조적 미의 효과를 더했다. 퇴청의 끝부분은 판벽으로 처리하여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최선평가옥#주문진읍#옛집#창호#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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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대공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가 군병을 훈련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짐
소개
대공 산성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둘레 약 3,000m의 성벽이다. 현재 동문·서문·북문 터와 부분적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일명 ‘보현산성(普賢山城)’ 또는 ‘대궁산성(大弓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축성연대는 미상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가 군병을 훈련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하는데, 한편으로는 발해의 대 씨(大氏)가 쌓아서 대공 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관광가이드
대공 산성은 1979년 5월 30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연석을 허튼 층 쌓기로 축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벽이 많이 허물어져 부분적으로 대개 2m 정도의 석축 흔적과 동·서·북쪽에 성문 흔적만 남아 있다. 이곳은 1894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을미의병 항쟁 때 민용호(閔龍鎬)가 이끄는 의병들이 일본군 경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도 유명해 의병들의 애국심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팁
보현사 입구 못미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대공 산성이 있다. 약 4㎞의 석축 산성이다. 백제 시조 온조왕 또는 발해 왕족인 대 씨가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기록에는 이곳을 보현 산성이라고 적고 있다. 고종 32년(1895) 을미의병 때 민용호가 이끄는 의병이 이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북쪽의 성벽은 험준한 절벽 지형을 이용해 쌓았는데 거의 무너져 있고, 남쪽에는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높이 2m 정도의 성벽이 있으며, 동·서·북쪽에 문 터가 조금 남아 있다. 성안에는 약 1,000년 전에 쌓았다는 우물터가 있다.
#기념물#온조왕#산길#을미의병#산성#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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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신복사지
범일 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신복 사의 절터
소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신복 사지는 통일신라 때 범일 국사가 창건한 신복 사의 절터이다. 건물터들의 배치 양식과 남아있는 보살상의 양식을 통해 고려 초기의 양식으로 추정되며 당시 강원특별자치도 영동 지방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절터에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와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이 남아있다.
관광가이드
삼면이 키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절터 안에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3층 석탑과 보살상이 있다. 절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옛 절터에서 천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한 곳만 바라보며 자리를 지켜온 보살상을 보고 있으면 경건함과 함께 어떻게 사라졌을지 모를 신복 사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떠오른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탑과 보살상이 만들어지던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권한다.
관광팁
신복사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강릉 시내에서 내곡동의 관동대학교 방향으로 가다 강릉시 보건소에 못미쳐 좌측으로 진입하는 작은 길로 들어선다. 이 소로를 따라가다 보면 곡간 사이에 삼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있으며, 주변 일대가 신복사지이다. 수많은 옛 절터들이 있지만 신복 사지의 3층 석탑과 보살상은 꽤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당시 유행하던 양식을 알 수 있다. 미리 시대별 보살상과 탑의 양식을 공부하고 조상들의 예술적 감각을 감상한다면 더욱 의미가 깊은 신복사지 관광이 될 것이다.
#조각#삼층석탑#석조보살좌상#석탑#보물#절터#고려#보살상#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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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보광리석조여래좌상
대좌와 광배를 갖춘 석조여래좌상
소개
보광리 석조여래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높이 1.7m의 석불이다. 1992년 6월 10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좌와 광배를 갖춘 석조여래좌상이며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옛 절터에 있다. 토지 소유자인 이순선에 의하면 약 50여 년 전 이 지역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가이드
보광리 석조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문양이 우수해 눈길을 끈다. 화강암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으나 광배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다. 나발(螺髮)은 마멸된 곳이 많고 육계(살상투)가 크며 두 귀는 긴 편이다. 결가부좌를 하였고, 법의(法衣)는 주름이 선명한 우견편단(右絹偏袒)을 걸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지역에는 3단 대좌를 갖춘 불상의 현존 예가 드물어 양양 서림리 사지 석불과 함께 3단 대좌를 전형적으로 갖춘 불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관광팁
보주형(寶珠形)의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구별되고, 그 사이는 보상화문(寶相華文)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장자리는 화염무늬〔火焰文〕로 장식되었고, 뒷면에는 명문(銘文)의 흔적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다. 대좌는 하대 하반부가 매몰되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각 면에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아랫면에 2단의 받침이 있다. 상대석과 하대석은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광리#석조여래좌상#대좌#광배#사찰#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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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권
방내리삼층석탑
급격히 줄어드는 2층 이상의 옥신을 지닌 삼층석탑.
소개
방내리 삼층석탑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위치해 있는 높이 3.5m의 석탑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단층기단에 3층의 탑신을 형성하였다. 초층탑신에는 사방불을 조각했으며 각 면에 양 우주를 모각하였다. 현재 탑이 위치한 곳은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세운 무진사(無盡寺)의 옛터라 전해오고 있으나 지금은 마을이 들어서 확인할 수 없다.
관광가이드
기단부는 분명하지 않으며 탑신부는 작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옥신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가 모각(模刻)되어 있으며 2층 이상의 옥신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신라 시대의 승려 자장이 월정사를 창건하면서 불상만 이동시키고 탑은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석탑의 건축양식으로 봤을 때 고려 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광팁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한 터라 북강릉 나들목에서 나선다. 북강릉 나들목을 나서서 한참을 나오면 큰 도로와 마주치는데 바로 경상도에서부터 올라오는 7번 국도가 된다. 고성 방향, 즉 북쪽으로 길을 잡아 대략 3km를 가면 연곡면 사무소 방향이다. 연곡면 사무소 앞의 영진리에서 6번 도로를 타고 내륙 방향으로 이동한다. 6번 도로를 계속 이용하면 진부에 도달한다.
#고려#석탑#무진사(無盡寺)#신라#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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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사모정공원
사모정공원은 효와 사랑이 인간의 근본임을 강조하며 조성되었다.
소개
사모정공원은 효와 사랑이 인간의 근본임을 강조하며 조성되었다. 사모정과 효공원은 어머니와 옛 고향 마을을 기리는 정서가 담겨있다. 사모정 정자는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조성되어 격조있는 모습을 드러내며, 효공원은 문화 공간으로서 드높은 격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강릉지역의 인물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학문·예술성·효행을 소개하면서 효행의 세계화를 위한 발원지로서 위상을 펼쳐내고 있다.
관광가이드
효공원의 남쪽 공간은 사모정과 시비들과 조각상이 배치되었고, 북쪽 가장자리에는 ‘효향 강릉’ 사람들의 효행을 선양하는 석화와 시비들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고, 특히 이 지방의 인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선행을 기리는 안내문이 돌에 새겨져 있다. 공원의 서쪽 가장자리에는 모정탑 2기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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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수문리당간지주
유려한 선과 소박한 인상을 지닌 당간지주
소개
1963년 1월 21일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높이 3.7m인 2개의 지주가 1m 간격으로 동서에서 마주 보고 있다. 마주 보는 내면·외면·전·후면에 별다른 조각이 없는 간소한 형식을 취하였으나 양 지주의 머리 부분은 내면 상단에서 외면으로 반원을 그리며 깎여 내려와 앞과 뒤쪽에서 보면 4 분원 모양이며 그 선이 매우 유려하다. 양 지주의 단면은 정사각형에 가깝고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좁아졌으나 큰 차이는 없다.
관광가이드
수문리 당간지주의 당간을 고정하는 간(杆)은 내면 상단에 직사각형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상부에만 설치하였다. 각 면의 돌을 다룬 솜씨는 정교하지 못하고 아무런 조각장식도 없어 당간지주로서는 세련되지는 않다. 그러나 상부의 간 구멍이나 반원의 기둥머리는 통일신라 시대의 조성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견실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동쪽 지주의 남측 면에는 해서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1817년에 다시 세워졌음을 나타낸다.
관광팁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 마주 보는 내측 면과 외면, 앞뒷면에 별다른 조식이 없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간결한 특징을 보인다. 당간은 사실 흔한 유물이 아니다. 깃대이기 때문에 주 재질이 나무라서 그렇다. 다만 문헌이나 소량 남은 유물을 통해 당간의 윗부분엔 용을 새기거나 삼지창을 올려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당간지주는 재질이 돌이기에 꽤 많이 남아 있다. 강릉만 해도 대창리, 수문리, 굴산사지 이렇게 세 군데에 남아있다.
#보물#당간지주#당간#통일신라#지주#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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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대창리당간지주
양변에 장식 수법으로 모[角]를 죽였으며 화강 석재로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소개
1963년 1월 21일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5.1m. 화강 석재.2개의 지주가 원래의 위치와 형상대로 1m의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다. 이 주변에서 간혹 기왓조각 등이 수집되어 일대가 절터임을 알 수 있으나 전하는 사적은 없다. 마주 보는 내면과 외면, 전·후면에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으나, 외면의 양변은 모[角]를 죽인 약간의 장식수법이 보인다.
관광가이드
현재 당간을 받치던 대석과 기단부의 돌이 없어졌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기저부에 직사각형의 지대석을 구축한 점으로 보아 기단부도 직사각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내면의 간구 이외에는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는 간결한 양식이라든지 소박하고 견실한 전체의 수법이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보물 69)와 거의 같아 조성 연대도 이와 비슷한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관광팁
대창리 당간지주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1m의 간격을 두고 두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지주 사이의 깃대를 받치던 받침이나 기단부가 남아 있지 않아 원래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바닥 부분에 직사각형의 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기단부 또한 직사각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조각한 흔적이 없는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깃대#당간지주#8세기경#망덕사지#당간#모[角]#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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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권
보광리분청자요지
강원도의 유일한 분청사기 가마터
소개
1994년 9월 23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발견된 가마터 중 분청사기 가마터로는 유일하다. 성산면 보광리의 명주군 왕릉(溟州郡王陵:강원기념물 12)에서 서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은 베리 안 마을 입구의 구릉지 가운데에 있다. 현재 가마가 매장되어 있을 만한 장소는 흙의 색깔이 다른 곳보다 붉다. 가마의 규모는 약 1.4×20m로 추정된다.
관광가이드
가마터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남동쪽 하단 경사면은 거의 유실되어 유구층(遺構層)이 노출되어 있고, 주변 일대에는 수많은 청자·분청사기 조각·도침(陶枕:도자기를 구울 때 그릇을 괴는 물건) 들이 흩어져 있다. 수습된 조각들은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다.
관광팁
그릇 안쪽에 흑상감 된 연당초문 대접과 분청인화국화문 접시, 분청인화연판문 대접 등이 있고 약간의 백자 조각들도 함께 수습되었다. 수습된 도자기 조각의 문양으로 볼 때 대체로 13∼15세기 전반의 분청사기 가마터로 추정된다.
#보광리분청자요지#강원도기념물#가마터#분청사기#유구층(遺構層)#청자#도자기